천안시 행정타운(Administrative town) 청당동 편,(1)

본지 ipc 종합뉴스·국제기자클럽/김용식 기자는 천안의 숨결이 담긴 옛 문화를 조명하기 위해 천안의 歷史와 옛 地名을 천안향토사(天安 鄕土史)등 자료집을 통해 기재하고 또한 변천한 천안시의 모습에서 잃어버린 지명을 인식 하기 위해 향토문화 연구가들의 새로운 자료를 받고자 하오니 많은 부탁을 기다리겠습니다. (편집자 주)

●청당골∼청수동∼청당동(淸堂洞)

천안 향토사에 따르면 본래 천안군 군 남면의 지역으로 청당골 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의 통폐합 에 따라 신둔지리(新屯之里)를 합쳐 청당리(淸堂里)라 하여 천안군 환성 면에 그대로 있다가 1963에 천안시 에 편입 되었다.

이후 청수동이라 동(洞)명을 으로 이어져 천안 시는 2005년 6월경 이곳 37만평을 조성하여 2016년 현재 천안시 행정타운 센터(Administrative town Center)로 국민연금관리공단, 건강보험공단, 동남경찰서. 천안세무서가 이미 들어서 잇고 2017년 초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대전검찰청 천안지청 신청사 이전 개청을 앞두고 한창 건설 중 이다.

게다가 청수방죽(청수 제2공원)주변을 둘러싸고 1만여 세대 아파트가 들어서 천안의 대도시 형태로 탈바꿈하고 청수저수지(옛 명 청수방죽) 원둘레 0.716km 자연경관을 살려 산책로를 시설, 많은 사람들의 체력 달련 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아울러 이곳 은 머지않아 15개 공공 기관이 들어설 전망 이어서 천안의 ‘행정타운’ 센텀(Centum)면모를 갖추어 법조 도시로 탈바꿈, 청당동의 옛 모습은 자취는 찾을 길 없고 역사의 증언이 될 청수 방죽 많이 그대로 남아 있다.

●유래(*1, 거재 巨才

자! 여기서 유래를 살펴보면 청당동 에서 남쪽으로는 토성산, 동쪽으로는 갈 미재에 둘러 사여있는 아늑한 마을로 청당동 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다. 예부터 거대한 인제가 배출된다고 거재라고 하였다. 본래 이 마을은 土城山의 土城과 露적봉의 토성사이에 있는 마을로 巨城(거성)이다. 산성은 전투나 방어용이고 거성은 사람들이 생활하는 곳이다. 살거(居)재성(城)의 뜻이 거재로 거성의 변음이 되고 변하여 거재라 불렀다.

●(*2, 용마부도 龍馬府圖)

청수동 저수지(현재 청수공원)의 동쪽에서 시작된 작은 구릉이 천안삼거리로 이어지는 곳이다. 낮은 구릉의 생김새가 용(龍)이 머리를 하늘로 향하여 나르는 형상이라 용마루도 또는 용마비두라고 한다. 이곳은 예부터 명당이 있어 사람을 안장하면 후손이 잘된다는 풍수지리설이 있다. 용마루가 하도를 업은 형상이라고도 한다.(한국화약 김승현 회장 조부 김재민公의 묘소가 있다.)

●(*3, 산제당 山齊當)

거재마을 동쪽 토성 산의 북쪽 끝에 있다. 해마다 음력 10월 1일에는 마을의 안위를 위하여 이곳에서 산제를 지낸다. 최근 천안시 에서는 전통 민속으로 지정하여 보전되고 있다,

●(*5,우렁산과 우렁소(沼)

청당동 하면 역시 거재마을에 유래가 많다. 우렁산이 있는 데 거재마을 남쪽에 있는 구룡동(九龍洞)으로 넘어가는 소로 길이 있다. 산의 생김새가 우렁이 목을 길게 빼고 배로기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우렁산 이라 부르고 이곳야산의 중간부에 웅덩이가 있는 데 우렁이가 많이 살아서 우렁소 라고 하였으나 지금은 볼 수 없다.

●(*7,청당골, 현재의 청당동 행정타운)

청당동 에서 가장 큰 마을로 청수초등학교가 동쪽에 있고 마을 북쪽으로는 천안 삼거리로 이어 지는 데 천안시 균형발전에 따라 아파트단지가 조성되면서 가운초등학교. 중, 고교 학군이 들어서 있고 또한 원성동 으로 잇기 위한 터널이 뚫리면서 시간비용을 절감 쉽게 국도 1호선과 연개 교통체계를 구축했다.

●그리고 청당동에는 탑상골, 원 씨 열녀정문, 시누골, 숲거리, 샛터말 용소골(풍세 가는 길 옆 벽돌공장) 옛날에는 이곳에 큰 연못이 있었고 용이 연못에서 나와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여 용소 골이라 하였다. (다음은 구룡동 九龍洞 편,이 기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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