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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전 독일 훔볼트대에 한국어 강좌 있었다국가기록원, 한글학자 이극로 강의 허가공문 등 관련기록 공개
홍옥경 기자 | 승인 2019.10.07 15:07
   
▲ 관련 기록물 및 주요 내용 번역
[IPC종합뉴스(국제전문기자클럽)] 영화 ‘말모이’의 주인공 류정환의 실존 모델로 알려진 한글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고루 이극로가 1923년 독일 훔볼트대학에서 한국어강좌를 개설했다는 독일 정부의 공식 문서 등 관련기록이 공개됐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이극로가 독일유학 중이던 1923년 유럽 최초로 프리드리히 빌헬름대학에 개설한 한국어강좌 관련 독일 당국의 공문서와 자필서신 등을 수집해, 제공할 예정이라고 8일 밝혔다.

이번 이극로 관련기록은 국가기록원이 지난 2014년 독일 국립 프로이센문화유산기록보존소에서 수집한 기록물 6철 715매 가운데 11매다. 국가기록원은 번역 등의 과정을 거쳐 일반국민에 제공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독일서 수집한 이 기록에는 1868년 발생했던 독일인 오페르트의 남연군묘 도굴사건 보고서, 한국주재 독일대사관이 본국에 보낸 정세보고서 등 19~20세기 초 한국 정치·경제·외교 관련 기록물 등이 포함돼 있다.

기록물 11매 가운데 공문서는 5매로 훔볼트대 동양학부와 독일 문교부, 이극로가 한국어강좌 개설과 관련 주고받은 것이다.

1923년 8월 10일 동양학부 발송 975호는 학장대리가 문교부 장관에게 한국어강좌 개설허가를 요청한 것이며, 같은 해 8월 31일 문교부 발송 8593호는 이를 허가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이극로의 요청으로 유럽 최초로 훔볼트대에 한국어강좌가 개설됐음을 입증하는 공문서다.

지금까지는 1922년 훔볼트대 철학부에 입학한 이극로가 몽골어를 수강하던 중 동료 학생들에게 틈틈이 한국어를 가르쳤는데, 이들이 강좌개설을 요청해 이를 대학에 건의하면서 성사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2007년 이 기록을 발굴해 국내에 처음 발표한 조준희 국학인물연구소장은 “이 때의 경험이 경제학 박사인 이극로가 훗날 조선어학회 간사장을 맡아 ‘조선어 큰사전’ 편찬을 주도하고, 주시경과 함께 한글사업을 완수한 어문운동가의 길을 걷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면서“이 기록은 96년 전 이미 유럽인을 대상으로 한국어강좌가 있었음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독일 학계에 알려진 1952년 한국어강좌 최초 개설을 29년이나 앞당긴 것으로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조준희 소장은 또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사전으로 체포된 33인 중 가장 긴 6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른 어문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인 이극로의 한국어강좌 관련기록을 정부가 수집·등록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며 “이번 수집이 이극로에 대한 더 많은 연구와 학술행사, 전시 등 재조명의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나머지 6매는 이극로 선생이 타자기로 작성한 문건이 2매, 자필 편지 2매, 기타 2매다. 타자기를 이용해 이극로가 직접 작성한 기록은 자기소개서와 1925년 1월 30일 동양학부 학장에게 보낸 서신이다. 여기서 그는 한국어는 2천만명 이상이 사용하는 동아시아의 세 번째 문화어이며, 문자가 독특해 실용적인 측면 외에도 언어학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극동아시아언어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으나, 독일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며 한국어강좌의 필요성을 논리정연하게 설파하고 있다.

이극로의 어문학적 업적을 연구해 온 차민기 박사는 “그가 수학한 훔볼트대는 언어학을 기반으로 설립된 대학이어서 언어를 민족구성의 중요 요소로 여겼다”면서 “이런 학풍의 영향으로 언어에는 민족의식이 담겨있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또한 한국어 강의경험 역시, 민족운동으로서의 어문운동에 투신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말했다.

차민기 박사는 “이극로는 학업을 마친 이후에도 곧바로 귀국하지 않고 독일과 프랑스, 영국에 머물렀는데, 프랑스와 독일의 음성실험실에서는 한국어 음성실험에 피실험자로 직접 참여했으며, 귀국 후 이를 토대로 한국어 음성학 이론의 기틀을 마련했다. 또, 해외유학과 그 이후 맺은 인맥을 중심으로 조선어학회 재정과 대외관계를 이끌었다.”면서 “일제강점기 연구와 어문운동에 전념한 그의 업적이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어로 작성된 자필편지 2매는 학위를 마친 이후 런던과 동경에서 각각 훔볼트대 은사들에게 보낸 것이다. 런던 발 편지는 독일을 떠난 이후 일정과 향후 체류계획을 전한 안부서신이고, 동경 발은 미국을 거쳐 현지에 도착하기까지의 경로와 새해 인사를 겸한 연하장이다.

일제강점기 유럽 유학생 독립운동을 연구한 홍선표 나라역사연구소장은 “이 편지에 자신의 독립운동을 소개하지는 않았지만,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은사의 안부를 잊지 않는 따듯하고 반듯한 그의 성품이 담겨 있다.”면서 “편지에 나타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1927년부터 1929년 1월 귀국하기까지의 경로는 귀국 후 활동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홍선표 소장은 이어 “이극로는 유럽 최초 유학생 단체인 유덕고려학우회에서 민족의식 고취와 독립운동을 이끈 인물”이라며 “독일인 부르크하르트가 관동대지진 때 일어난 재일한인 참상을 독일신문에 기고하자 그를 찾아가 일본의 대량학살 진상을 듣고, 1923년 10월 26일 베를린에서 유럽 최초의 재독한인대회를 개최해 일본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렸다. 한글학자뿐만 아니라, 독립운동가로서도 재조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소연 국가기록원장은 “우리에게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우리 역사와 독립운동 관련 기록을 수집해 후대에 물려줄 사명이 있다.”면서, “우리나라 관련기록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해외기록을 보다 체계적으로 수집해 일반 국민과 연구자들에게 적극 제공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홍옥경 기자  topipc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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