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의 숨결이 담긴 "역사와 옛 지명"신부동 편

(62만 천안시민의 민원을 처리하는 천안시 청사)

[ipc종합뉴스] 김용식 기자는 천안의 숨결이 담긴 옛 문화를 조명하기 위해 천안의 "歷史와 옛 地名"을 천안향토사(天安 鄕土史)등 자료집을 통해 기재하고, 또한 문화적 가치를 향상하고 과거를 올바르게 인식하기 위해 변천한 천안시의 모습에서 잃어버린 지명을 인식 하고자 연구 기재 하고 있으니 향토문화에 애착이 있으신 독자 분들의 향토사 자료를 받고자 하오니 많은 부탁을 드립니다.(편집자 주)

(사진 상, 옛날 천안 신부동 방죽안 5거리-사진 하, 변천한 현재의 모습)

●신부동의 유래는...

(70년대 논과 밭으로 농촌풍경이 시대 발전에 따라 변천한 현재의 신부동)

신부동(新富洞)=천안시의 북쪽지역인 공산의 남쪽 기슭과 안 서천에 연결되는 신 부천을 중심으로 천변 양족에 대단히 발전 된 천안시의 대표적인 동이다. 단국대학교와 북일 고등학교 등 교육기관이 들어서고 큰 공장이 설치되고 특히 교통센 타의 역할을 하는 종합터미널이 이곳에 들어서면서 천안의 중심 역을 담당하고 있다.

본래 천안군의 북일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다라 신대(新垈)와 역리(驛里)를 합하여 신부라 하고 천안읍 영성 면에 편입되었다가 1963년 천안 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신 부동이 되었다.

◎역말(驛村역촌)=신부동에서 두 번째로 큰 마을 이다. 지금의 단국대학교 입구로 조선시대 성환도찰방(成歡道察訪)에 예속되었던 28개 역중의 하나인 신은역(新恩驛)의 자리다. 성환찰방이란 조선시대에 천안과 공주 연기 지방의 지방 역을 관장하던 주역으로 종육품(從六品)의 문관(文官)이 주관하였다.

(이 조 때 파발마 즉 나라에서 급이 전달하는 교통수단으로 말(馬)바꿔 타던 곳을 역말이라 하던 부근에 경부고속 천안ic가 들어서 지금도 천안 원주민들은 역말이라 부르고 있다.)

◎말거리(말 걸이)=경부국도에서 역말로 들어서는 골목에 있었다. 얼마 전 만해도 남남나이론공장이 설치된 곳이다. 옛날에 공무로 三南地方(삼남지방)에 가던 관리가 역말에 가서 공무표…식의 馬牌(마패)를 제시하고 말을 바꾸어 타고 갔다. 이때 타고 온 말과 타고 갈 말을 매어 놓았던 곳이라 말거리라고 하였다.(현시대의 역(驛)의 역할을 말함이다.)

◎물방아간=바로 지금의 복자여자고등학교 옆의 국도에서 서쪽으로 천안천변에 있었던 물방아 간이다. 정미소가 일반화되기 이전에는 많은 곡식을 이곳에서 찧었다 고 한다 1930년대까지도 물방아가 돌았다고 하나 지금은 자취도 없고 주택가로 변했다.

(이곳이 천안천 70년대만해도 아이들이 물장구치며 고기잡고 엄마는 둑에서 빨래하던 시절이 주마등 처럼 떠오른다.)

◎밤나무 쟁이=지금의 천안북중학교 뒤편 북쪽과 서쪽의 언덕 일대를 가리킨다. 밤나무가 많아서 밤나무쟁이라는 골 이름이 붙었고 1930년대까지도 밤나무 숲이 우거져 있었다.

◎방죽인=신부동에서 가장큰 방죽이다. 방죽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 방죽 안이다. 지금의 신 부천 냇가 둑 옆에 옛날에 큰 방죽이 있었다고 전한다.

(필자가 서있는 곳이 안서동 저수지며 사진 뒷편 좌 단국대 치과병원, 중 빨강 건물은 천안단국대. 우측은 단국대병원이다.

◎옹골(甕谷 옹곡)=역말 동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지금은 경부고속도로 밑으로 굴다리를 통하여 왕래한다. 근방에 점토질이 좋아서 옹기그릇 만들기에 알맞아 많은 옹기를 굽던 곳이다. 1940년대까지도 옹기를 생산하였으나 지금은 자취도 없이 사라 졌다.

◎화약고(火藥庫)= 천안시 균형발전에 따라 천안 ic 방면 오른 쪽으로 주유소가 있는 동쪽이다. 1930년대부터 해방 후 이후에도 한국화약에서 화약을 보관 해왔으나 지금은 풍세면 남관리 로 이전한 후 자취가 사라진 자리는 시대 형 건물로 숲을 이루고 있다.

도깨비집=방죽안 냇둑에 무당들이 세웠진 재당이다. 짚으로 영을 엮어서 천막과 같이 만든 여러 개의 도깨비 집이 있었고 무당들이 떡을 해 놓고 빌던 곳으로 1940년 말까지 있었으나 지금은 주택이 들어서 있다.

◎서낭댕이=지금도 복자여고 정문 앞을 지나는 국도이다(국도1호선)옛날 이곳에 큰 고목이 있었고 그 아래에 돌 묻이가 있었다한다. 길가는 길손들이 노신(路神)을 위로하고 여로에 재앙이 없게 해달라고 빌고 가던 곳이다 선낭이 있는 고개라 선낭당 고개라고 불렀다.이 밖에도 만은 유래가 있으나 지면상 줄이기로 하겠습니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IPC종합뉴스(국제전문기자클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